조선시대 왕_26대 고종: 대한제국의 개혁과 쇠퇴
1. 즉위와 배경
고종(高宗, 1852~1919)은 조선의 제26대 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이다. 그는 아버지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이하응과 부인 여흥 민씨(명성황후)의 아들로 태어났다. 1863년 철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흥선대원군의 정치적 책략에 의해 어린 나이(12세)에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고종의 즉위와 함께 흥선대원군이 섭정을 맡았으며, 이 시기 조선 사회는 급격한 변화와 개혁을 겪게 된다.
당시 조선은 내부적으로 세도 정치의 폐해로 인해 국가 기능이 마비되고 있었으며, 대외적으로는 서구 열강과 일본의 압박이 심화되고 있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고종의 즉위는 조선의 근대화를 촉진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극심한 정치적 갈등과 외세의 개입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2. 흥선대원군의 개혁과 실각
고종 즉위 초기, 국정을 장악한 흥선대원군은 강력한 개혁 정치를 추진하였다. 그는 세도 정치의 핵심이었던 안동 김씨 가문을 축출하고, 왕권을 강화하는 한편 삼정(전정, 군정, 환곡)의 문란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경복궁을 중건하여 왕권의 상징성을 회복하려 했으며, 서원 철폐를 통해 붕당 정치의 폐단을 줄이고자 했다.
그러나 대원군의 강압적인 개혁과 쇄국 정책은 내부적으로 많은 반발을 불러왔으며, 결국 명성황후를 중심으로 한 친청(親淸) 세력과의 갈등으로 인해 실각하게 된다. 1873년, 고종은 친정을 선언하고 대원군을 축출하면서 정치의 주도권을 장악했지만, 이는 곧 외세의 개입을 더욱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3. 개항과 불평등 조약
고종의 친정 이후 조선은 급속도로 외세와의 접촉이 증가하게 되었다. 1876년 일본과의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면서 개항을 하였고, 이는 이후 조선이 서구 열강과 맺는 일련의 불평등 조약의 시발점이 되었다.
1) 강화도 조약(1876년): 일본이 군사력을 동원하여 조선을 강제로 개항시키며 체결된 조약으로, 일본에게 치외법권과 경제적 이권을 부여하였다.
2) 조미수호통상조약(1882년): 미국과의 최초의 근대적 조약으로, 조선이 국제 사회에 본격적으로 편입되는 계기가 되었다.
3)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1882년): 청나라와 맺은 조약으로, 청의 종주권을 인정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4)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과의 통상 조약: 서구 열강과 맺은 조약들은 대부분 불평등한 조건을 담고 있었으며, 조선의 경제적 예속을 심화시켰다.
4. 갑신정변과 동학농민운동
조선이 개항 이후 급격한 변화를 겪으면서, 내부적으로 개화파와 수구파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1884년 김옥균, 박영효 등의 급진 개화파가 일본의 지원을 받아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이는 청나라 군대의 개입으로 3일 만에 실패하고 말았다. 이 사건 이후 조선의 정치적 혼란은 더욱 심화되었으며, 청과 일본의 대립이 조선에서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1894년에는 농민들의 불만이 폭발하여 동학농민운동이 발생하였다. 전봉준을 중심으로 한 농민군은 부패한 정부와 탐관오리의 척결을 요구하며 봉기하였고, 이는 조선 정부가 청나라에 군사 지원을 요청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에 일본도 군대를 파견하며 청일전쟁(1894~1895)이 발발하였고,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조선에서 청의 영향력을 완전히 배제하게 되었다.
5. 대한제국 선포와 국권 침탈
1897년, 고종은 조선 왕국을 대한제국으로 선포하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이는 일본과 러시아의 세력 다툼 속에서 조선의 독립을 지키기 위한 조치였으나, 실질적으로는 외세의 개입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 광무개혁(1897~1907년): 대한제국 시기 고종은 근대적 개혁을 시도하며 군제 개편, 철도 및 통신망 확충, 산업 진흥 정책 등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재정난과 일본의 견제로 인해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기 어려웠다.
2) 을사늑약(1905년): 일본이 조선의 외교권을 강제로 박탈한 조약으로, 이후 대한제국은 사실상 일본의 보호국으로 전락하였다.
3) 한일병합조약(1910년): 결국 1910년, 대한제국은 일본에 의해 강제 병합되었으며, 고종은 황제의 자리에서 강제로 물러나게 되었다.
6. 고종의 말년과 평가
고종은 대한제국의 황제로서 나라의 독립을 유지하려 했으나,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과 내부 정치의 혼란 속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특히 그의 통치 기간 동안 외세의 개입이 점점 심화되었으며, 이는 조선의 국권 상실로 이어졌다.
1919년 1월 21일, 고종은 덕수궁에서 갑작스럽게 승하하였다.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독살설이 제기되었으며, 이는 3·1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3·1운동은 조선 민중들이 대한제국의 독립을 외치며 일본의 식민 지배에 저항한 거대한 민족운동이었다.
결론
고종은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의 전환을 주도한 군주로서, 근대적 개혁을 시도하였으나 결국 외세의 압박을 극복하지 못하고 나라를 잃었다. 그의 치세는 조선 왕조의 최후와 대한제국의 짧은 역사를 아우르는 시기였으며, 근대 한국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그의 정책과 개혁 시도는 일부분 성과를 거두었으나, 강대국들의 세력 다툼 속에서 조선은 점차 주권을 상실해 갔다. 고종의 사망 이후 한국의 독립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었으며, 그의 유산은 이후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한 투쟁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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